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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희 나이 프로필 과거 사건 전부인

퍼스트발자욱 2021. 6. 13.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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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희는 음악감상실 쎄시봉과 포크 록으로 대변되는 70년대를 상징하던 주요 대중음악인 중의 한 명입니다. 당시에는 보기 드물었던 싱어송 라이터로서 혹은 작곡가, 프로듀서로 활약함으로써 여전히 한국의 대중음악에 자신의 자취를 남기고 있습니다.

 

 

이장희는 1947년생으로 올해 75세로 쎄시봉의 주요 멤버였던 윤형주, 송창식과 동갑내기 친구이며 1945년생인 조영남에게는 두살터울 동생입니다. 홍일점 멤버였던 배우 윤여정과도 역시 동갑 친구이며 초등학교 동창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방송에서 보기에 한참 어린 막내 취급을 하던 김세환은 1948년생으로 겨우 1살 차이가 납니다.

 

 

경기 오산 출생이지만 한국전쟁으로 인해 경남 마산에서 어린시절을 보냈으며 초등학교 4학년때 서울로 올라와 서울중과 서울고를 거칩니다. 중학교 시절 삼촌의 친구였던 조영남의 기타 연주를 보며 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고등학교때 이미 팝음악 500여곡의 가사를 줄줄이 외울 만큼 음악에 푹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그만큼 학업과는 거리가 멀었다 합니다. 

 

그럼에도 4살때 천자문을 뗐을 정도의 천재성과 자식 걱정하는 어머니를 위한 마음이 한 몫하여, 단지 일주일간의 벼락치기 입시 공부로 연세대학교 생물학과에 합격합니다. 하지만 쎄시봉으로 상징되는 평생의 음악적 동지들과의 만남으로 결국 학교는 뒤로하고 음악 인생을 걷게 됩니다.

 

영화 쎄시봉

 

1971년에 DJ 이종환의 권유로 정식 데뷔한 후, '겨울이야기', '그건 너',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한잔의 추억'등 자신이 그간 작곡해 놓았던 곡들이 연이어 히트되며 70년대 대표적인 싱어송 라이터로 명성을 쌓기 시작합니다. 1973년에는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던 동아방송의 '0시의 다이얼'의 DJ도 맡으며 한창 음악인으로서 고공행진을 하게 됩니다.

 

 

1974년에는 교제해 왔던 이대 불문과 출신의 서혜석과 결혼을 하며 개인사도 한창 꽃을 피웁니다. 아내인 서혜석은 동일방직 창립자이자 회장의 딸로서 소위 재벌가 2세로 더욱 세간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또한 이장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는 첫사랑이었던 아내를 위해 만들었던 곡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 노래는 당시 대히트를 쳤던 영화 '별들의 고향'의 ost로 쓰이며 대중들에게 깊이 각인되어 명실상부한 이장희의 대표곡이 되었습니다. 결혼한 두 사람은 이후 슬하에 1남 1녀를 두게 되지만 이장희가 미국에 있던 80년대 초반에 이혼에 이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이장희는 두번의 결혼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두번째 부인과의 결혼시기와 이혼시기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이장희는 1975년 12월초 윤형주 등과 함께 연예인 대마초 사건에 휘말리며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당시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을 마친 후 구속 수감되기까지 하는데요. 이후 '그건 너', '불꺼진 창', '한잔의 추억' 등 이장희의 대표곡들이 정권비판적이라는 이상한 이유로 금지곡까지 되면서 활동정지 상태에 이릅니다.

이 시기에 스스로 가수 생활을 접자는 생각을 하게되며, 이에 사실상 5년 남짓한 공식적인 가수 생활을 마감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음악활동을 손에 놓은 것은 아니었는데요. 반도패션이라는 옷가게를 성공적으로 경영하면서도 그룹 사랑과 평화의 '한동안 뜸했었지', '장미'와 같은 히트곡을 제조하거나 김현식, 김수철 등의 후배 가수들을 양성하기도 합니다. 한참이 지난 1988년에는 김완선의 3집(나 홀로 춤을 추긴 너무 외로워), 4집(이젠 잊기로 해요)에도 관여하며 녹슬지 않은 작곡 능력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후 1980년에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이주한 이장희는 남다른 사업수완을 발휘하며 레스토랑과 라디오 방송국(LA 라디오 코리아) 운영으로 상당한 재산을 모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재산의 규모는 자세히 알수 없으나, 미국에 있을 당시 친한 지인들 부부 10쌍과 멕시코 크루즈 여행을 떠났는데 비용을 모두 본인이 부담했다 하니 상당히 부유함을 알 수 있을 듯합니다. 

 

 

미국에서 은퇴를 준비하던 이장희는 과거 우연히 들른 울릉도의 풍광에 반해 2004년 미국생활을 청산하고 울릉도에 정착하게 됩니다. 농장을 포함한 약 14,000평의 땅을 매입하고 스스로 울릉천국이라 명한 이곳에서 자연과 친구들과 벗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현재는 이장희가 기증한 500여평의 땅에 지자체 예산으로 건립한 울릉천국 아트센터에서 상설무대 공연도 가지며 자연과 벗하는 모두가 부러울만한 만년의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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