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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해경 나이 데뷔 남편 가족 사건

퍼스트발자욱 2022. 1. 18.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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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해경은 8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들의 목록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가수 중의 한 명인데요. 수많은 히트곡 외에도 무대에서의 특유의 시크한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강렬하면서도 독특하게 기억되는 가수이기도 합니다.

 

 

1980년 서울국제가요제 예선전에서 '누구의 노래일까'라는 곡으로 등장한 이래 데뷔 43년째를 맞이하고 있는데요. 나이가 1962년 4월 18일생으로 올해 61세가 됩니다. 그럼에도 전성기 시절의 미모를 환기시키는 외모와 몸매를 유지하고 있기도 한데요. 신체 프로필은 161cm, 45kg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민해경의 본명은 백미경이며 군 장교 출신이었던 아버지의 근무지였던 대구에서 3남 2녀의 넷째로 태어났습니다. 학창 시절 대부분은 서울에서 보냈으며 가야금과 고전무용을 익히며 국립 전통예술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투자 실패와 퇴역 등이 겹치며 가정형편이 어려워져 일찍이 생업에 뛰어듭니다. 겨우 고2때 대담하게 밤업소를 찾아가 노래를 부르겠다 했는데요. 처음에는 제지당했으나 오디션을 통과하고 밤무대에 서게 됩니다. 이후 노래 실력이 입소문을 타고 번지며 음반 관계자를 만나게 되고 1집 앨범 '누구의 노래일까'를 발매하게 됩니다.

 

 

첫 앨범 발매 뒤 연이어 발표한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가 크게 히트를 치며 그해 tbc 신인가수왕을 차지하며 단번에 인기 가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이어 각종 국제 가요제 출전과 1982년 mbc 10대 가수 등 인기가수로 자리매김해 갑니다.

 

1983년에는 김현준과 부른 듀엣곡 '내 인생은 나의 것'이 가요톱텐 4주연속 1위를 차지하며 흥행몰이를 이어나가는데요. 하지만 돌연 이 곡이 청소년들에게 반발심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금지곡 판정을 받게 되면서 활동을 중단하는 불운을 겪기도 합니다.

 

 

불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해 말 요정출입 스캔들에 연루되며 방송금지 처분까지 받게 되는데요. 민해경은 자신의 사생활을 철저히 조사해 결백을 밝혀달라는 탄원서를 관계기관에 보낼 정도로 억울해하였으나, 사건은 명료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로 민해경의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혔습니다.

 

곧바로 다음해 연초에 방송금지 해제가 이루어지지만, 상당한 충격을 입은 민해경은 이후 일본으로 무대를 옮겨 활동하며 국내 활동을 중단하게 됩니다. 

이후 약 2년간의 일본에서의 활동 후 1986년에 국내로 복귀하며 귀국앨범을 발매하게 되는데요. 여기에 수록된 '사랑은 이제 그만'과 '내 마음 당신 곁으로'가 크게 사랑을 받으며 성공적인 국내 복귀를 이루게 됩니다.

 

 

이후 '그대는 인형처럼 웃고 있지만', '그대 이름은 장미', '보고 싶은 얼굴', '미니 스커트' 등의 베스트 히트곡들을 내놓으며 90년대 초반까지 최고의 인기가수로 활동합니다.

 

국내 가수들중 최초로 란제리룩을 선보일 정도로 트렌디하고 변화에 대담하여 한국의 마돈나로 비유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그대 모습은 장미로 활발한 한 해를 보낸 1988년 mbc 가요대전에서 가수상이 아닌 베스트 드레서상 수상자로 선정되자 수상을 거부하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언행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민해경은 상의 공정성에 의문을 표시했으며 가수가 노래로 평가되지 못하고 의상으로 수상하는 것은 수락할 수 없다는 거부이유를 들었는데요. 이로 인해 mbc로부터 방송 제재를 받는 등 불이익을 겪기도 하지만 민해경의 강단이 대중의 뇌리에 박히는 사건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엄격함과 강한 인상 탓에 가요계 군기반장으로 오인받기도 했는데요. 그런 역할을 일부러 한 것은 아니지만 DJ DOC의 하늘도 혼나는 일이 있는 등 후배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선배이기는 했습니다.

 

결혼은 1996년 10월경에 일반인이자 5살 연하인 이인수와 하게 되는데요. 1995년경에 만났을 당시 카페를 운영하고 있던 남편과 커피 외상을 계기로 인연이 되고 민해경이 프러포즈함으로써 결실을 맺게 되었답니다. 최종 결혼까지는 원만치 않았는데, 결혼을 앞두고 남편이 대마법 위반으로 걸리고 이에 가족들이 반대함으로써 결혼이 무산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는데요. 

 

 

다행히 초범이라 불기소 처분을 받아 풀려났고 민해경은 가족들의 반대에도 결혼을 강행합니다. 허나 반대한 가족들이 일절 참석치 않았고 또한 언론의 과잉 취재를 피하기 위해서 조용히 결혼식을 치릅니다. 당시 민해경은 임신중이었고 출산후 현재의 1녀를 두게 됩니다. 이런 우여곡절끝에 현재 오랫동안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3남 2녀의 민해경의 형제들은 음악활동과 연관되어 종사했던 전력을 가지고 있는데요. 둘째 오빠인 백강기는 그룹 부활과 블랙홀의 매니저로 활동했고, 셋째 언니 백춘자는 2009년 뒤늦게 가수의 꿈을 이뤄 민재연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남동생 백경기 또한 신예찬이라는 이름의 록가수로 활동한 적이 있습니다. 목사인 큰 오빠조차 목사로 활동하기 전에는 민해경의 매니저로 활동한 일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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