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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하 실제나이 신상 10대가수 파산 결혼

퍼스트발자욱 2021. 4. 24.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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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은하는 '밤차', '아리송해', '봄비',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등 디스코와 발라드를 넘나들며 수많은 히트곡을 남긴 80년대를 주름잡았던 톱가수였습니다.

1977년부터 1985년까지 9년 연속으로 mbc 10대 가수에 선정되었다는 것만 보아도 당시 이은하의 한국 가요계에서의 위치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 같습니다.

 

 

본명은 이효순으로, 유명 아코디언 연주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렸을때부터 음악세계로 들어온 이은하는 겨우 10대 초반인 13살의 나이에 '님마중'이라는 곡을 받아 가수로 데뷔하기에 이릅니다.

데뷔 후 밤무대 등에서 노래를 부르긴 했으나 오히려 방송에서는 당시 미성년자는 무대에 오를 수 없는 규정 때문에 나갈 수 없었는데요. 이에 본래 출생 연도인 1961년보다 세 살을 올려 1958년생으로 등록하여 방송 무대로 진출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1976년에 발표한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으로 전국적 인지도를 얻으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연달아 1978년 '밤차', 1979년 '봄비', '아리송해'가 공전의 히트를 침으로써 한국의 정상권 가수로 활동하게 됩니다.

 

치솟았던 인기를 반영하듯 1982년에는 영화 '날마다 허물벗는 꽃뱀'이라는 에로?영화의 주연으로 배우 진출을 하기도 하고 영화 주제가까지 부릅니다(영화의 성격상 베드신도 있었지만 대역이 했다는군요).

 

 

이후에도 '사랑도 못해본 사람은'으로 가요톱텐 골든컵을 획득하고, 지금도 이은하의 대표곡으로 떠오르는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등으로 1980년 중후반까지 가요계의 대표 가수로 활동합니다.

 

한 시대를 주름잡은 성공한 가수라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90년대 시세로 8억원에 달하는 자택을 소유할 정도로 재산도 남부럽지 않게 모았는데요.

자연스럽게 전성기가 지나면서 성공한 가수들이 으례 그렇듯이 편안한 일상을 구가하며 가수 후반기를 마무리했을듯한 이은하에게 난관이 다가온 것은 90년대 초반이었습니다.

 

 

성공한 가수 인생으로 이끌어준것이 아버지였듯이 그녀를 힘든 처지로 몰아넣게 된 사람도 아버지가 되었는데요. 90년 초반 건설업에 종사하던 아버지가 사업실패와 보증 문제로 거액의 채무를 지게 됩니다. 당시 고가의 자택을 처분하면서까지 이은하는 수십억원의 채무를 갚아 나갑니다.

 

하지만 2015년경 아버지의 남아있던 빚과 더불어 본인의 기획사 사업 실패로 인해 생긴 빚인 10억원에 대하여 파산신청을 하기에 이릅니다. 이후 2017년 10월경 법원에서 이를 받아들여 면책결정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힘들게 지낸 사연은 2017년경 여러 매체에서 이은하의 근황을 알리게 되면서 많은 대중들이 알게 되었는데요. 당시 톱가수였다고 믿기 힘든 경제적 상황과 살이 급격하게 부어오른듯한 이은하의 외모 때문에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는데요. 

당시 이은하는 척추전방전위증이라는 허리 통증을 앓고 있었고, 이로 인한 스테로이드 복용의 부작용으로 살이 부어오르는 쿠싱증후군까지 앓고 있었습니다.

 

심각해진 허리수술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채무로 인해 계속 일을 해야 하기에 현재 수술을 받을 수 없다는 이은하의 얘기에 많은 시청자들이 안타까워했는데요.

 

 

사연이 알려진 후 전화위복이 되었는지 2020년 초에는 kbs 아침마당에 나와 밝은 모습을 선보였는데요. 자연스럽게 증세들이 많이 호전되었다며 이전보다 건강해진 모습을 선보여 사람들의 우려를 씻어 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간 그녀를 괴롭혔던 채무도 정리되었다며 앞으로의 밝은 활동을 예고하기도 하였습니다.

 

 

현재까지도 미혼인 이은하는 과거 자신의 대표곡 <미소를 띄우며~>에 자신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를 직접 가사로 써내어 화제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당시 아버지의 반대로 결혼이 성사되지 못했던 과거를 한참 시간이 지난 현재에 밝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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